괌, 평생 잊지 못할 여행지가 된 이유
사실 괌은 여행을 가기에는 애매한 장소였다.
내가 생각하는 괌이란, 가족 여행이나 부모님과 함께하는 효도 관광을 목적으로 리조트 패키지로 가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른 휴양지와 비교하더라도, 하와이 보다는 소박하고, 발리보다는 즐길 거리가 없는 곳 같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토리가 없는 애매모호한 휴양지 느낌?
약간 사이판 리조트 느낌도 나는 것이 미국령이긴 하지만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느낌.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 모호한 장소, 그것이 괌이었다.
이런 괌을 가게 된 것은 2012년이었다.
2012년은 내가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를 퇴사한 해였다. 그때 다녔던 회사는 글로벌 회사였는데, M&A도 무지막지 하게 했던 회사로 항상 새로운 회사들이 합병되거나 합병된 후 퍼포먼스가 떨어지면 해당 사업부가 갑자기 없어지거나(?) 하는 회사였는데, 내가 다니던 사업부는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핵심 인물들이 대거 탈출(?) 하면서 먼저 탈출 하지 않으면 골로 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눈치게임 하듯이 인재들이 빠져나가던 해였고, 그 사건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일단 잔류를 선택했었으나, 조직 안정화 조치를 위한 새로운 관리자들과의 면담 과정에서의 큰 실망, 그리고 외부 헤드헌터를 통한 새로운 잡 오퍼를 받으며 결국 나도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 과정은 어찌나 힘겨웠는지 원인불명의 병이 날 지경이었다.
회사에서는 계속 빠져나가는 인력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퇴사 의향을 밝히는 직원들을 불러 무의미한 면담을 계속 시도했고, 하나의 면담이 끝나면 그 윗 관리자가, 그 다음은 더 윗 관리자가 면담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진을 뺐다.
아무리 굳게 퇴사 의사를 밝혀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던 면담들.
결국 그 사람들도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본인들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한 것이었겠지만, 당사자인 나는 스트레스로 열이 39도까지 올라가고, 이명이 들리는 등 상태가 꽤 나빠지고 말았다.
퇴사와 이직 사이에는 약 한달 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때는 그런 시간적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그 기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 날짜를 잡고 바로 다음 날 여행을 떠날 곳을 물색했다.
그즈음에는 이미 동남아 휴양지는 어느정도 다 돌아본 상태여서 가까운 곳은 고려 대상에서 빠졌고, 유럽 등을 가자니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고려 대상에 오른 곳이 괌.
리조트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가능하고, 해변은 하와이 못지 않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까우며, 깨끗한 곳이라는 설명에 최종 여행지는 괌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몸 상태. 의사 선생님은 간수치가 너무 올라가있고 고열이 있으니 이 상태로 여행을 가면 안된다고 했지만, 나는 꼭 해변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국내에 있다가는 폭발할 것만 같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게 어찌어찌 괌으로 출발하게 되었고, 리조트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기본 패키지에 며칠을 더해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물론, 도착한 후 며칠은 음식을 먹어도 미각이 느껴지지 않아 힘들었지만, 여행 후반부로 갈 수록 몸상태가 급격하게 좋아지면서 귀국할 때는 다시 정상적인 컨디션을 찾을 수 있었다.
근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퇴사가 뭐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하고 피식 웃고 말지만, 그때는 정말로 힘들었던 기억에, 아직도 티비에서 간간히 괌에 대한 내용을 볼때마다 2012년의 여름이 기억나고야 만다. 정말 힘들었고, 정말 좋았던 그 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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